“예배 시간에 그것도 설교 중에 담임 목사를 찬양하고 특정 인물을 높여주며 세상 노랫가락이나 하고 있다면 누구를 위한 예배인지 묻지 않을 수 없다.”

오세준 목사/새누리교회 담임
오세준 목사/새누리교회 담임

얼마 전 필자는 모 대형교회 주일 예배 영상을 보다가 경악을 금치 못했다. 설교 중에 음악 목사로 보이는 사람이 담임 목사 찬양의 노래를 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최근에는 그 교회 담임 목사가 주일 예배 설교 중에 그동안 자신이 행한 업적을 자랑하며 뽐내더니 교인들과 함께 세상 노래인 유행가를 열창했다. 필자는 이 장면을 보고 더 충격을 받았다. 게다가 그 예배에 참석한 유력 대선후보를 소개하며 설교 중에 칭찬하고 높여주는 것을 보고 아연실색했다.

주일 예배가 아닌 전도 집회나 부흥회에서 이런 광경을 보았다면, 그런대로 봐줄 만했을 것이다. 하지만 주일 예배 시간에 벌어진 일이기에 심각하게 보지 않을 수 없었다. 이 예배의 모습은 우발적이 아니라 치밀하게 기획된 것으로 보였다. 이런 행태는 예배를 엔터테인먼트로 전락시킨 것으로 예배의 본질을 훼손한 것이 아닐 수 없다. 예배의 유일한 대상은 하나님이시며 오직 하나님만이 영광을 받으셔야 한다. 그런데 예배 시간에 그것도 설교 중에 담임 목사를 찬양하고 특정 인물을 높여주며 세상 노랫가락이나 하고 있다면 누구를 위한 예배인지 묻지 않을 수 없다. 

이런 반응에 대해 혹자는 남의 교회가 어떻게 예배하든지 무슨 상관이냐, 뭘 하든 많은 사람이 모이고 교회가 성장하면 좋은 일이 아니냐고 핀잔할지 모른다. 문제는 이 교회의 예배 실황이 각종 미디어를 통해 퍼져나간다는 점이다. 그래서 그 교회만의 문제가 아니라 한국교회에 지대한 영향을 준다. 특히 중소형의 작은 교회에 미치는 영향을 무시할 수 없다. 그 영향은 다른 게 아니라 교회 성장에 대한 오해와 그로 인해 받는 유혹이다. 그 오해란 저런 식의 예배와 설교가 많은 사람을 모이게 하여 대형교회로 성장한다는 인식을 하는 것이다. 따라서 그런 교회의 예배와 설교를 벤치마킹하려는 유혹을 받을 수 있다.

그렇지 아니해도 양적 성장에 목말라 하는 중소형의 많은 교회가 대형교회를 교회 성장의 모델로 삼는 경우가 적지 않다. 그래서 대형교회의 예배와 설교, 목회 프로그램을 배우려는 중소형 교회의 목회자가 많다는 것은 다 아는 사실이다. 심지어 어느 교회 담임목사는 모 대형교회 목사 설교를 토씨 하나 틀리지 않게 그대로 주일 예배에서 설교하다가 들통 나는 바람에 곤욕을 치르기도 했다. 또한 대형교회 프로그램을 여과 없이 도입하여 갈등과 혼란을 초래하는 교회도 있다. 이 같은 현실은 대형교회를 교회의 스승으로 여긴다는 방증이 아닐까? 

대형교회를 통해 배울 수 있는 점이 많이 있을 것이다. 그렇다고 대형교회가 교회의 스승은 아니다. 교회의 스승은 교회의 머리이시며 진리이신 예수 그리스도이시다. 교회는 예수 그리스도를 배우고 그 안에서 세워가야 한다. 그런데 이런 본질보다는 교회의 양적 성장에 매달려 무분별하게 대형교회를 따라가려고 한다. 마치 대형교회가 하는 사역은 모두 복음적이고 진리의 표준이라도 되는 양 말이다. 그러나 율법주의, 기복주의 설교 아니면 인문학 강좌가 복음적 설교로 둔갑하고 종교 엔터테인먼트에 빠진 대형교회가 많다는 점을 직시해야 한다. 성장의 조급함 때문에 무조건 대형교회를 스승으로 삼을 게 아니다. 아무리 좋아 보여도 먼저 복음의 잣대로 분별하는 여유를 갖고 느리지만 건강한 교회 성장을 도모해야 할 것이다. 

한국교회 전체 교인 수가 갈수록 줄고 있고, 그나마 있는 교인들은 초 고령층이 되었다. 저출산 인구절벽에 유아부, 어린이부가 점점 눈에서 사라지고 있다. 젊은 층은 교회가 꼰대 집단이라며 교회를 기피 한다. 이럴수록 교회의 본질, 복음의 본질 회복을 위해 목회자부터 변화의 몸부림을 쳐야 하는데, 그런 기미는 별로 보이지 않고 목회 테크닉에 골몰하는 형국이다. A. W. Tozer 목사가 「예배와 엔터테인먼트」라는 저서에서 “설교자들이 교인 수를 조금이라도 늘리기 위해 천박한 예화를 들고 농담하고 웃기고 즐겁게 해주려고 애쓴다”라고 세속화된 미국교회를 비판한 이 내용이 한국교회와는 상관없기를 바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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