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월의 부활절기는 해마다 오지만 생각 깊은 이들은 예수의 부활과 함께 나의 부활을 말하고자 한다. 예수는 하나님이기에 그의 부활은 당연한 수준이고 문제는 인간의 부활을 말하고 있다. 

나사로가 병들어 죽었다. 그의 두 누이가 서둘러서 예수께 연락했으나 예수는 그들이 기다리는 시간에 그들 곁에 오시지 않았다. 예수께서 그녀들 곁에 오셨을 때 나사로는 무덤에 있었다. 

뒤늦게 예수를 만난 여인들이 예수가 제때에 와 주지 않은 것을 비난하면서 ”…이제라도 주께서 무엇이든지 하나님께 구하시는 것을 하나님이 주실 것을 아나이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네 오라비가 다시 살아나리라 마르다가 이르되 마지막 날 부활 때에는 다시 살아날 줄을 내가 아나이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 나를 믿는 자는 죽어도 살겠고 무릇 살아서 나를 믿는 자는 영원히 죽지 아니하리니 이것을 네가 믿느냐’(요11:25~26). 

여기까지가 마르다와 예수의 대화이다. 뒤늦게 마리아가 예수계시는 동구 밖까지 나와서 그의 언니 마르다와 같은 시비를 예수께 하였을 것이고 예수는 같은 말씀을 마리아에게도 주셨을 것이다. 

마리아는 그래도 울고, 예수는 마리아의 비통한 눈물에 그의 눈물까지 보태면서 슬퍼하셨을 것이다. 예수께서 나사로의 무덤을 여셨다. 44절로 이어지는 말씀을 보라. 나사로가 죽은 지 나흘 만에 나오는 사건을 우리는 요한복음 11장에서 만나게 된다. 

예수의 부활, 나는 부활이요생명이다. ‘나를 믿는 자는 죽어도 살고 무릇 살아서 나를 믿는 자는 영원히 죽지 아니하리니’를 예수는 우리에게 분명히 묻고 계신다. 이 요구가 부활절의 명령이고 예수와 믿는 그리스도인들의 만남이다. 이 말씀을 해결하지 않고 내가 다시 죽을 수 없는 생명인 예수로 이 세상을 살아가고 있는가에 대한 답변을 내어놓아야만 그리스도인이다. 

죽음과 삶의 한계는 생물학 그리고 철학적 명제 뛰어넘는 하나님의 겨드랑이까지 넘보는 신앙이 아니면 가까이 할 수 없다. 돈, 교세, 감투, 명예, 지식 등급 따위와는 먼 곳에 부활의 존엄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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